정부 보고서에서 '표 안의 표'가 사라진다
8월 24일부터 실·국장 보고서까지
행정안전부가 AI가 읽을 수 있는 형식으로 보고서 서식을 바꾼다. 3월 시범운영을 거쳐 8월 24일부터 실·국장 보고서까지 넓힌다. 도구가 아니라 입력을 손봤다.
정부가 보고서에서 표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행정안전부는 8월 23일 'AI 친화적 보고서 작성'을 본격 실시한다고 밝혔고 8월 24일부터 적용 범위가 실·국장 보고서까지 넓어진다. 지난 3월부터 돌린 시범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나온 조치다.
바뀌는 건 내용이 아니라 서식이다. '표 안의 표'처럼 겹쳐 놓은 양식과 복잡한 셀 병합을 없앤다. 표와 그림에는 제목을 달고 번호로 순서를 표시한다. 문장은 주어와 서술어가 분명한 서술형으로 쓰고 항목 표시는 표준화하며 디자인형 제목과 목차 같은 시각적 꾸미기는 줄인다. 규정 자체도 세부 조항 나열에서 핵심 원칙 두 가지로 간소화됐다.
한 줄 정리
정부가 공문서의 목표 독자를 사람에서 사람과 기계 둘 다로 바꿨다.
한눈에 보기
| 항목 | 지금까지 | 바뀌는 방향 |
|---|---|---|
| 표 | 표 안의 표, 복잡한 셀 병합 | 제목·번호 부여, 병합 단순화 |
| 문장 | 개조식 단문 나열 | 주어·서술어가 분명한 서술형 |
| 항목 표시 | 문서마다 제각각 | 표준화된 계층 표기 |
| 꾸미기 | 디자인형 제목·목차 | 지양 |
| 가이드라인 | 세부 규정 다수 | 핵심 원칙 중심 |
표는 사람 눈에만 표다
한글 문서에서 셀을 병합해 만든 표는 화면에서 격자로 보인다. 기계가 그 파일을 열면 격자가 아니라 순서가 뒤엉킨 문자열 뭉치가 나온다. 병합된 셀이 몇 칸을 덮는지, 어느 헤더가 어느 값에 걸리는지가 시각 정보로만 남아 있어서다. 표 안에 표가 한 겹 더 들어가면 그 관계는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행안부가 요구하는 처방은 소박하다. 표와 그림 위에 제목을 붙이고 번호를 매기라는 것, 병합을 단순하게 하라는 것. 두 줄짜리 요구인데 이걸 지키면 파일 하나가 "예쁜 그림"에서 "구조가 있는 데이터"로 바뀐다.
문장 쪽도 같은 이유다. 추진 → 검토 → 확대처럼 화살표로 이어 붙인 개조식 항목은 사람 머릿속에서 문장으로 복원되지만 기계는 주어도 시제도 인과도 못 찾는다. 서술형으로 풀어 쓰라는 지침은 문체 취향이 아니라 입력 품질 요구다.
시범운영이 확인한 것
행안부는 시범운영 기간에 편집과 표 구성에 들어가던 시간이 줄었다고 밝혔다. AI로 자료를 요약하거나 발표자료를 만들 때 문서 인식 오류가 줄어 정확도가 올라간 것도 함께 보고됐다. 구체적인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다. 시범운영 중 행안부는 보도자료를 마크다운 형식으로도 함께 제공했다. 워드프로세서 파일이 원본이고 텍스트는 곁가지라는 순서를 뒤집은 셈이다. 지능형 업무관리 플랫폼 '온AI' 적용도 같은 기간에 넓혔다.
윤호중 장관은 이걸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행정 혁신"이라고 표현했다. 표현은 크지만 실제로 바뀐 건 서식 규칙 몇 줄이다. 그리고 그 몇 줄이 정부가 매년 생산하는 문서 전체의 성질을 바꾼다.
당신 회사 문서는 어느 쪽인가
AI를 붙였는데 성과가 안 나온다고 말하는 팀을 보면 원인이 모델이 아닌 경우가 많다. 회의록은 캡처 이미지로 남아 있고, 견적서는 셀 병합이 네 겹인 엑셀이고, 제안서는 텍스트가 도형 안에 박힌 슬라이드다. 이런 자료를 넣고 요약을 시키면 결과는 늘 어딘가 틀린다. 틀린 요약이 나오면 사람이 다시 검수하고, 검수하느라 시간이 더 들면 그 팀은 AI를 안 쓰게 된다.
콘텐츠 에이전시라면 클라이언트 브리프와 과거 캠페인 결과가, 커머스 팀이라면 상품 상세와 CS 응대 기록이, 교육 사업이라면 커리큘럼과 수강생 피드백이 여기 해당한다. 이번 주에 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 정도다. 자주 쓰는 문서 서식 하나에서 셀 병합을 풀고, 표에 제목과 번호를 달고, 사내 위키의 표 하나를 문장으로 다시 쓴다. 열 명짜리 팀이면 반나절이면 된다.
anyAX 관점
행안부는 새 모델을 사지 않았다. 서식 규칙을 두 가지로 줄이고 보도자료를 마크다운으로 같이 냈을 뿐이다. 도구를 바꾼 게 아니라 도구에 들어가는 입력을 바꿨고, 그래서 시범운영에서 요약 정확도가 올랐다.
이 순서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팀은 반대로 간다. 구독을 늘리고 프롬프트를 다듬고 에이전트를 붙인다. 정작 그 파이프라인에 들어가는 첫 재료는 셀 병합 네 겹짜리 엑셀 그대로다. 모델을 아무리 좋은 걸로 갈아도 '표 안의 표'는 여전히 뒤엉킨 문자열로 들어간다.
정부가 실·국장 보고서까지 서식을 통일한 건 다른 신호이기도 하다. 공공 문서가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텍스트로 쌓이면 몇 년 뒤 그 더미 위에서 검색하고 분석하는 쪽이 생긴다. 조달 공고와 정책 자료를 다루는 팀에게는 지금 서식을 맞춰 두는 것이 나중에 붙일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자주 쓰는 문서 하나를 골라 셀 병합부터 푸는 것, 오늘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이고 그거면 충분하다.